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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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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가 남긴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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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역사실 고려조선시대 이미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말, 즉 9세기 후반에 전통적인 도기(陶器)제작 기술에 새로이 중국의 자기(磁器)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청자(靑瓷)와 백자(白磁), 흑유(黑釉) 등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청자는 11세기에 이르러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유약이 은은한 비색을 띠며, 기형에 있어서도 직선이 강조된 중국 도자기에 비해 부드러운 곡선의 조형미가 드러나는 고려의 독창적 특징을 완성하였다. 조선의 도자기는 분청사기(粉靑沙器)와 백자(白磁)로 대표되는데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이전에 소멸되었고, 백자는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태토 위에 백토(白土)를 입히는 분장기법(粉粧技法)에 있다. 백토분장과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에 따라 상감(象嵌)·인화(印花)·조화(彫花)·박지(剝地)·철화(鐵畵)·귀얄·분장 등으로 분류된다. 백자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순백자(純白磁), 상감백자(象嵌白磁), 철화백자(鐵畵白磁), 청화백자(靑華白磁), 진사백자(辰砂白磁) 등으로 분류된다.

광양 옥룡사지

옥룡사는 광양 백운산의 일지맥인 백계산의 남단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선승이자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이 35년간이나 주석했을 뿐만 아니라 통진대사(洞眞大師 慶甫), 지문(志文) 스님 등이 그 법맥을 이어왔고 나말여초(羅末麗初)의 쌍비(雙碑)와 쌍탑(雙塔-浮屠)이 전해져 그 이름이 일찍부터 알려져 왔다.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지 14동(이상)과 축대 4개소 등이 확인되었으며, 조선전기 즉 임진왜란전까지 사세(寺勢)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도선국사 부도전지에서 석곽(石槨) 안에 석관(石棺)이 안치된 유구가 노출되었는데, 이 석곽 내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와편(瓦片)만 출토되어 그 축조시기를 도선국사 부도가 조성될 때로 볼 수 있다. 전 사역에 걸쳐 유구들이 확인되었으며, 고려청자, 조선백자, 용문 암막새, 연화문과 당초문이 시문된 전(塼)등이 출토되었다.
옥룡사지는 국가사적 제 407호로 지정되었다.

영암 천황사지

천황사는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월출산 사자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월출산은 선사시대 이래 발달된 해로와 비옥한 영산강주변의 농경지를 배경으로 불교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천황사지는 1995년부터 3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목탑지, 건물지 5동이 확인되었다.
목탑지는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을 이루어 정사각형 평면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단의 한변은 10.5~10.8m이다. 초석은 윗면이 평평한 자연석으로 주좌(柱座)는 없고, 목탑지의 서쪽 중앙부에만 계단이 있다.
건물지는 법당지와 승방지로 추정된다. 승방 관련 주거유적에서는 방과 부엌시설이 확인되었으며, 방에는 온돌시설이 잘 남아 있었다.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보림사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선문구산(禪門九山)중에서 제일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사찰이다.
대적광전 건물지와 철불대좌에 대하여 1996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건물지는 규모 남-북 21.7m, 동-서 19m로 장방형의 기단 안에 3차례에 걸쳐서 수축되었다. 1차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가운데 칸은 어칸으로 넓다. 2차 건물지는 1차 건물지에서 사방으로 툇간을 연장하였다. 3차 건물지는 최근의 건물지로 가장 앞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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