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가 남긴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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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시대(기원전 100년경 ~ 기원후 300년)는 삼국시대의 원초적 단계로 고구려가 국가단계로 성장하고 백제, 신라, 가야의 모태인 삼한이 있었던 시기이다.
철기 생산이 본격화되어 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가 널리 쓰였다. 철기의 사용으로 농경의 효율이 높아져 생산력이 향상되고, 사회의 계층분화가 빨라져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토기의 제작에 있어서도 박자(拍子)에 의한 타날문의 시문과 회전판의 사용, 굴가마(登窯)의 채용 등 새로운 기술이 사용되었다. 집자리에서는 움집과 지상가옥안에 부분적으로 온돌시설이 채용되고 내부공간도 확대되어 대형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부해안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에는 거의 형성되지 않았던 조개더미(패총)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전남동부지역에서는 원형계 주거지와 토광목관묘 유적이 주로 확인된다.
유구의 서쪽부분이 유실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토광의 크기는 현길이 102cm, 너비 90cm, 깊이 14~23cm이다. 장축방향은 북동-남서이고, 토광내의 목관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유물은 유구의 중앙부에 양이부호와 단경호가 1점씩, 동쪽벽에 막물려 철도자 1점, 서쪽 절단면에 철겸 1점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순천시 서면 운평리 운평마을 북동쪽 해발 94m 야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년에서 2007년까지 2차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고분군은 산정상부에서부터 말단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 고분군와 비슷한 입지형태를 갖추고 있다. 조사는 봉토분을 중심으로 봉토분 3기(1·2·3호분), 토광묘 9기, 수혈식 석곽묘 21기가 토광묘는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25기가 조사되었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고,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화덕이 확인되었다. 화덕의 위치는 대부분 북쪽으로 치우친 장벽쪽에 설치하였으며, 내부에서는 대부분 원형에 가깝게 굴토되었으며, 지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와 토기의 저부편이 거의 모든 주거지에서 확인되었다.
유물은 석기류는 숫돌이 일부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는 발형토기·옹형토기·주구토기·파배·잔 등의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된 호형토기 등이다.
보성군 조성면 조성리의 독립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구릉의 정상은 비교적 넓은 평탄면이 조성되었으며, 주변으로는 바다와 산이 지척에 위치하고 있어 정착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자연 조건을 갖추었다. 2001년과 2007년 2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40기, 수혈유구 7기, 환호, 패총 등이 복합적으로 확인되어 마한시대의 유력한 읍락의 핵심취락으로 추정되었다. 주거지는 단위 면적당 유구와 유물의 빈도가 대단히 높았으며, 대체적으로 등고선의 높이와 주거지의 평면형태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데 방형계->말각방형계->원형계 순으로 등고선의 높이가 낮아곳에 위치한다. 패총은 해남 군곡리와 보성 금평 패총과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환호는 외부의 적에 대한 방어의 기능이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호형토기·발형토기·완·고배·개배·기대·소형토기·주구토기, 방추차, 토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53기가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원형계가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 주거지내에서 노지가 확인되었다. 노지는 대개 서쪽 벽에 치우쳐 확인되었다. 벽구는 21기의 주거지에서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경사가 급한 위쪽에 눈썹같이 둘려져 있다. 4주식의 방형주거지는 5기로 다른 주거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형이며, 주거지 내부에 등간격으로 대형의 주공 4개 시설되었다.
유물은 파수부주구·심발형토기의 경질무문과 장란형토기·경배·발형토기 등의 타날문토기, 개·컵형토기의 가야계토기가 출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