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통일신라시대

HOME 전시고고역사실통일신라시대

고고역사실통일신라시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가 남긴 흔적을 찾아서...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만나보세요 !

고고역사실 통일신라시대 이미지

통일신라시대(676-935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지역을 차지하고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룬 시기이다. 전제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중앙과 지방의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완비하였으며, 불교를 국가이념체계로 하는 통치체제를 완성하였다.
전남동부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고분(古墳), 산성(山城), 불교(佛敎)관련 유적이 있다. 고분으로는 순천 용당동 2호분과 광양 용강리 석곽묘를 들 수 있다. 이 고분들은 후대의 훼손으로 봉분(封墳)이나 개석(蓋石)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작은 돌을 깐 장방형 시상대(屍床臺)를 한쪽 장벽에 치우쳐 배치하고, 석곽(石槨)은 길이에 비해 너비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인화문토기(印花紋土器)가 주로 출토되었다. 산성유적은 백제시대에 초축되었다가 통일신라 이후까지 지속된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유적으로 여수 호랑산성과 광양 마로산성을 들 수 있다.
불교관련 유적은 광양 옥룡사지와 순천 금둔사지로 건물지와 관련 유물이 확인되었다. 한편 여수 화장동유적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와요지 2기가 발굴조사된 바 있다.

광양 마로산성

유적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와룡마을 남동쪽 해발 208.9m의 마로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2001년 9월에서 2005년 9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이루어 졌다. 성벽의 총 길이는 550m 정도이고, 너비는 5m 내외이며, 축조방법은 내·외벽을 모두 쌓고 그 사이에는 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은 협축식이다.
마로산성은 백제시대에 초축되었지만, 내부 시설과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로는 문지 3개소, 건물지 17동, 석축집수정 5개소, 점토집수정 7개소, 다수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마로산성에서 확인된 석축집수정은 좁은 공간에 밀집 분포하고 있어 산성에 있어서 수원(水原) 확보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출토유물은 백제 토기, 기와(평기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평기와+막새), 마구류, 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특이 이형 문양 막새와 호등, 청동은제 장신구는 희귀한 유물로서 9~10세기대 이 지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광양 마로산성은 2007년 12월 31일에 사적 제 492호로 지정되었다.

광양 용강리 택지개발지구 유적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525번지 일원의 구릉 동남쪽 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2차례 이루어 졌는데, 1차 조사인 관동 가지구에서 백제후기~통일신라시대 석곽묘 30기가 조사되었다. 이 석곽묘들은 수혈식보다는 횡구식의 비중이 더 높고, 대개 등고선과 직교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북침이 많다. 출토유물은 단경호, 완, 병, 개배 등의 토기류와 관못, 철제도끼, 철제낫 등의 철기류 등이다.

순천 금둔사지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둔산의 서쪽 중턱에 자리 하고 있다. 금둔사는 경내에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石佛碑像(보물946호)과 三層石塔(보물945호)이 잘 보존되어 있어 중요한 사찰이다. 발굴조사는 1999년에서 2003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건물지 10동과 통일신라시대 기와(평기와, 막새, 특수기와),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금둔사는 출토유물을 통해 보았을 때 중심연대가 통일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특히 석불비상과 삼층석탑의 불교사적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통일신라시대 당시 금둔사는 이 지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