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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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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역사실백제시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가 남긴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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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역사실 백제시대 이미지

백제는 부여계 이주민들이 한강 유역에 세운 백제국이 점차 마한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나라이다. 그 후 도읍을 웅진(지금의 공주),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삼국시대에 전남동부지역이 백제에 속하였다고 하지만 그 상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6세기 초엽에 이지역이 백제의 영역하에 들어왔다는 기사가 있어 참고된다. 전남동부지역의 백제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으로는 산성과 고분이 있다.
백제시대에 초축된 산성유적은 지금까지 18개소가 조사되었는데, 이중에서 순천 검단산성, 여수 고락산성, 광양 마로산성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들 백제 산성들은 모두 내외 협축식의 석성이고, 내면에 거친 섶문양(繩蓆文)이 시문된 백제 기와가 거의 예외없이 출토되고 있다.
백제 고분으로는 순천 죽내리 성암·광양 용강리·여수 죽림리유적 등이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다. 수혈식인 가야계 고분과 달리 백제계 고분은 횡구식 석실묘들이 많다. 광양 용강리 11호 석곽묘 바닥에는 백제 기와가 전면에 걸쳐 깔려 있고, 축조 방법이 인근의 광양 마로산성과 흡사하여 피장자가 마로산성의 초축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양 마로산성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와룡마을 남동쪽 해발 208.9m의 마로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2001년 9월에서 2005년 9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성벽의 총 길이는 550m 정도이고, 너비는 5m 내외이며, 축조방법은 내·외벽을 모두 쌓고 그 사이에는 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은 협축식이다.
마로산성은 백제시대에 초축되었지만, 내부 시설과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로는 문지 3개소, 건물지 17동, 석축집수정 5개소, 점토집수정 7개소, 다수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백제 토기·기와(평기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토기·기와(평기와+막새)·마구류·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양 마로산성은 2007년 12월 31일에 사적 제 492호로 지정되었다.

광양 용강리 석곽묘

유적은 용강리 관동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00m 떨어진 구릉에 위치한다. 유구는 구릉 정상부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동남쪽 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조사결과 30기의 석곽묘가 조사되었는데, 이 가운데 2기는 석개토광묘(石蓋土廣墓)이다, 출토유물의 형식으로 보면 백제후기부터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혈식과 횡구식이 혼재되어 있지만 소형석곽이나 석개토광묘(18·30호)를 제외하고는 횡구식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횡구식은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지는데, 추가장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시상대가 정연하면서 인화문 토기가 출토되는 석곽과 할석을 부정연하게 깔고 전형적인 백제토기만 나오는 석곽으로 구분된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있으며, 토기의 기종은 광구호, 대접, 단경호, 완, 개배, 합, 병 등으로 출토량은 빈약한 편이다.

여수 고락산성

유적은 전남 여수시 문수동과 미평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고락산성은 해발 335m의 고락산정(보루)과 고락산의 동쪽에 있는 해발 200.9m의 봉우리(본성)를 둘러싸고 있다. 이처럼 고락산성은 높은 봉우리에 보루, 낮은 봉우리에 본성을 갖춘 복합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예가 드문 형태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1999년에서 2003년까지 총 3차례 이루어졌다. 성벽의 둘레는 본성이 약354m이고, 보루는 약 100m이다. 성벽의 너비는 모두 510~550cm 정도이고, 축조방법은 내·외벽을 모두 쌓고 그 사이에는 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은 협축식이다. 내부시설은 문지 3개소, 건물지 13개소, 집수정 3개소, 주거지 10개소 등으로 좁은 면적에서 많은 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초축연대는 6세기 전반기로 파악된다.
출토유물은 대부분이 백제계 토기류와 기와류, 철기류들인데, 본성에서 가장 낮은 북쪽에서 확인된 구상유구에서는 대가야계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순천 검단산성

순천시 해룡면 성산리 산 48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138.4m의 산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430m이다.
검단산성은 정유재란 때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주둔하여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로서 그 당시에 축성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선산성’이라 불리어져 왔다. 그러나 발굴조사를 통하여 6~7세기의 축성하였던 백제시대 석성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성벽조사를 비롯하여 문지 3곳, 지상건물지 4동, 수혈건물지 4동, 집수정 3곳, 대형우물 1곳, 수혈유구 1곳, 저장시설 1곳, 옹관 2기 등 다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여수반도의 길목과 광양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혜의 요새에 위치한 검단산성의 기능은 군사적 용도 즉 이 고장을 수호하는 목적의 산성으로 파악된다.
검단산성은 국가사적 제 41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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