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민 | 안녕하세요! 화요일 여러분의 점심시간을 책임지는 라디오 코너, | 김은승 | <새로운 언어, 익숙한 감정>입니다! | 서지민 | 여러분은 하교 후 다시 찾아갔던 교실에서 왜인지 모를 허전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 김은승 | 이불에 파묻혀 시끄러운 바깥소리를 들으면서 오히려 안락함을 느꼈던 적은요? | 서지민 | 분명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안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긋나있다는 느낌은 다들 한번쯤은 받으셨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 김은승 | 느껴본 적 없으면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고, 느껴본 적 있어도 말로 표현하자니 어려운 이 감정들! 알고 보니 다른 나라 언어들로는 지칭하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 그 단어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 서지민 | 마음속 깊은 곳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막연한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감정들을 다시 한번 선명히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 김은승 |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많이 알게 되면 그만큼 섬세한 감정 표현과 원활한 인간관계도 가능해지실 거고요. | 서지민 | 그럼 바로 이 감정들의 이름을 알아보기 전에, 뜨거운 감자의 '고백' 듣고 오겠습니다. | 김은승 | 가사에 집중해서 들어보시면 '감정 단어? 그런 걸 왜 알아야 하지?' 하셨더라도 '이런 상황을 위해서라도 필요하겠구나'를 느끼실 거예요. |
뜨거운 감자 - 고백
김은승 | 첫 번째로 소개 드릴 단어는 ‘Kenopsia(케놉시아)’입니다.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드려야 이해가 쉬울까요? | 서지민 |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봤을 만한 상황을 가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 | 김은승 | 좋습니다. 다들 학창 시절에 반에 뭐 하나 빼먹고 와서 다시 돌아간 적 있으시죠? | 서지민 | 아, 많죠 많죠. 특히나 저는 잘 덜렁대는 성격이라 어떤 날은 필통, 어떤 날은 안내장, 또 어떤 날은 우산까지. 맨날 까먹어서 자주 다시 교실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 김은승 | 그러신가요? 저는 자주 까먹지는 않았는데 한 번 까먹을 때마다 신발, 핸드폰 같이 중요한 걸 까먹어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반에 돌아가야 했던 게 기억나요. 그때는 계단 오르는 게 2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 서지민 | 각자 상황의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한 번쯤은 해본 경험 같습니다. | 김은승 | 네, 그렇죠. 그럼 종례 후 돌아갔던 그 교실의 풍경을 한번 상상해 보실까요? | 서지민 | 음, 창문 밖으로는 햇살이 노랗게 지고 있고 내가 자리로 돌아가는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한 교실이 떠오르네요. | 김은승 | 방금 전까지 친구들과 대화하고 뛰어놀았고, 종례하고 교실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우렁차게 인사하고 나왔는데 한순간에 조용해진 교실이 사뭇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서지민 | 아무래도 그렇죠. 예시를 보니 이 ‘Kenopsia(케놉시아)’라는 단어가 조용함, 고요함 같은 뜻을 가지고 있나 보네요? | 김은승 | 비슷합니다. 더 정확히 풀이해 보자면 평소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만 그 순간에는 조용하고 텅 비어 있어서 느껴지는 쓸쓸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말해요. | 서지민 | 오, 방학 때 텅 빈 운동장이라던가 밤이 깊어 조용한 시내, 문을 닫은 놀이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네요. | 김은승 | 이 ‘Kenopsia(케놉시아)’를 많은 분들이 느꼈을 것이라고 더욱 확신하는 게요, 저희는 코로나를 겪었잖아요? | 서지민 | 그 시기에는 모두가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이 북적거려야 하는 공간도 텅텅 비어 있었죠. | 김은승 | 그러니까요. 그래서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느껴보지 않으셨을까 싶어서 오늘의 서문을 열 첫 단어로 선정했거든요. | 서지민 | 그러면 혹시 이 단어도 유래 같은 것이 있나요? | 김은승 |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비어 있다’라는 뜻의 ‘ken?s(케노스)’에 ‘본다’라는 뜻을 가진 ‘opsia(옵시어)’가 붙은 말이에요. | 서지민 | ‘본다’라는 뜻의 단어가 붙었다고요? 갑자기 시각과 관련된 뜻이 나오니까 신기하네요. | 김은승 | 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이 ‘Kenopsia(케놉시아)’가 비어 있음을 보는 감각이기 때문이에요. | 서지민 | 우리말의 ‘쓸쓸하다’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는데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 김은승 | 이 감정은 '쓸쓸하다'보다 더욱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우리말의 '쓸쓸하다'는 통상적으로 느끼는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이 상황이야!’라고 정의되어 있지는 않잖아요? | 서지민 | 그렇죠. 상황과 상관없이 이별이나 실연처럼 내 감정 상태에 따라서 길을 걷다가도 쓸쓸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 김은승 | 그런데 이 ‘Kenopsia(케놉시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각인 거죠. | 서지민 | 듣고 보니 두 감정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긴 하네요. 있어야 할 것이 없으니까 그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거겠죠. | 김은승 | 이 단어를 소개하는 영상에서는 ‘사라진 자리가 무게를 가지는 감정’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 서지민 | 사라진 것들도 무게를 가지다니. 재미있는 말이네요. | 김은승 | 네, 그렇죠. 저도 그래서 이 표현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 서지민 | 지금까지 ‘Kenopsia(케놉시아)’ 살펴보았는데요, 태연의 ‘11:11’ 듣고 두 번째 단어 보러 가보시겠습니다. |
태연 - 11:11
김은승 | 네, 노래 듣고 왔습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단어는 무엇인가요? | 서지민 | 두 번째로 살펴볼 단어는 바로 ‘Chrysalism(크리살리즘)’입니다. | 김은승 | ‘Chrysalism(크리살리즘)’이요? 영어로 번데기가 ‘Chrysalis(크리슬레스)’인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요? | 서지민 | 오, 학창 시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셨나 봐요. 말씀하신 것처럼 두 단어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김은승 | 번데기와 관련이 있다면... ‘성장하다’와 비슷한 의미일까요? | 서지민 | 그렇다기보다는 평온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더 정확히는 ‘비바람이 치는 밖의 날씨같이 시끄러운 바깥과는 대조적으로 안전하고 따뜻한 실내에 있을 때 느끼는 포근함과 아늑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김은승 | 아, 그래서 번데기라는 표현을 쓴 거군요? | 서지민 | 그렇죠. 이 단어를 만든 존 케닉은 양수 같은 고요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김은승 | 양수같은 고요함이요? 흠... 분명 양수가 고요할 것 같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서 잘 기억나진 않네요. | 서지민 | 하하, 그건 아마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요? 매우 아늑한 정도를 말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 김은승 | 이 단어를 들으니 한 가지 경험이 떠오르네요. | 서지민 | 오, 무슨 경험인가요? | 김은승 | 토요일 주말에 약속이 있던 날이었어요. 오후 약속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지는 거예요. | 서지민 | 어머, 그러면 약속이 취소됐겠네요?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 김은승 | 아니요. 저는 오히려 반대였어요. 그 주간에 한 일이 많았어서 마침 쉬고 싶던 참이었거든요. | 서지민 | 그런 거라면 타이밍이 좋았네요. 쉬고 있는데 창밖 빗소리가 시끄럽진 않던가요? | 김은승 | 약속이 취소될 정도로 비가 많이 왔던 터라 소나기나 이슬비보다는 훨씬 빗소리가 쎄더라고요. 가끔 천둥도 치고, 비가 와서 그런가 차들이 달리는 소리도 더 잘 들리고 경적소리도 자주 울렸던 것 같아요. | 서지민 | 그런데 이 경험을 이 단어를 듣고 떠올리신 걸 보면 그 상황에서 뭔가 아늑함을 느끼셨나 봐요. | 김은승 | 네, 그때 저는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거든요. 밖은 소란스럽고 시끄러운데 창문 하나를 두고 제 방은 조용하고 따뜻하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 서지민 | 저도 방금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했는데 오히려 밖의 소란스러움이 침대 속의 아늑함을 더욱 잘 느껴지게 해 준 것 같은데요? | 김은승 | 네 맞아요. 그 순간만큼은 제 침대에 막 하나가 있어서 저를 보호해 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안전하게 느껴지고, 또 아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 서지민 | 사실 우리는 평소에 매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잖아요? 그런 우리에게 가끔씩은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김은승 | 그런데 저희 코너 이름이 <새로운 언어, 익숙한 감정>이잖아요? 이 단어는 언뜻 우리말의 ‘아늑함’, ‘평안함’과 비슷한 것 같은데 새로운 언어라고 할 수 있나요? | 서지민 | 그럼요. 이 감정은 또 우리말의 아늑함, 평안함과는 다르답니다. 앞서 이 감정을 설명드릴 때도 말씀드렸듯이 이 ‘Chrysalism(크리살리즘)’은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반드시 있어야 하거든요. | 김은승 | 아,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있고,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내가 있는 공간은 아늑하고 안전할 때 느끼는 감정인 거군요? | 서지민 | 맞아요. 소란이 내 고요의 증거가 되는, 나를 위해 세상이 조금은 소란스러워야 하는, 이기적이지만 솔직한 감정이죠. | 김은승 | 이 단어를 듣는 내내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떠올랐는데요, 이 생각에 딱 어울리는 MC GREE의 ‘Dangerous’ 듣고 오겠습니다. 이 곡의 또 다른 이름이 ‘이불 밖은 위험해’거든요. |
MC GREE - Dangerous
김은승 | 네, 독특하고 귀여운 노래였습니다. 신나게 단어를 소개드리고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단어를 소개하는 시간이 왔네요. | 서지민 | 마지막 단어는 바로 ‘Monachopsis(모노콥시스)’입니다. | 김은승 | 2학기가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까, 다들 개총, 그러니까 개강총회는 하셨겠죠? | 서지민 | 확실히 하고도 남는 시간이죠. 저는 개학한 주 목요일이 바로 개총이었는걸요. | 김은승 | 좋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지금부터 개총에 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학년은 1학년이라고 생각해 보시고요. | 서지민 |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합니다. 이름, 나이, MBTI 등등 어색함을 풀기 위해 테이블에 있는 모두가 노력해요. | 김은승 | 노력 덕분인지, 술이 조금 들어가서인지 긴장이 조금씩 풀리고 분위기도 달아오르기 시작합니다. | 서지민 | 선배들도 착하고, 동기들도 친절하고.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아요. | 김은승 | 그런데,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안 맞는 퍼즐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처럼 묘하게 그 분위기가 불편합니다. | 서지민 |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요. | 김은승 | 단순히 낯을 가리고 어색해서가 아닙니다. 상상하기 쉽게 개총으로 상황을 가정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한 친구들의 모임에 가도 느껴지는 감각입니다. | 서지민 | 친구들이니까 편하고, 대화도 끊기지 않아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내가 이야기를 주도하기도 합니다. | 김은승 | 분명히 즐거운 자리인 게 맞는데 무언가 낯설게 느껴져요. 뭐가 문제지 생각해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언가 그 자리의 주파가 나와 안 맞는 느낌인 거죠. | 서지민 | 자신이 속한 환경이나 세상에 완벽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 이게 바로 ‘Monachopsis(모노콥시스)’입니다. | 김은승 | 단순히 상황이나 사람이 낯설고 어색한 것을 떠나서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이질감이 들고 소외감이 느껴지는 상황일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 서지민 | 이 단어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맥락 없는 소외감’이에요. 누가 왕따시키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갈등이 없는데도 소외감을 느낀다는 거죠. | 김은승 | 저도 이 감정 느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나만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 서지민 | 그러니까요. 왜 느끼는 건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는데 저도 분명 느껴본 것 같네요. | 김은승 |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Monachopsis(모노콥시스)’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 서지민 | CNBLUE의 ‘외톨이야’ 들으시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
CNBLUE - 외톨이야
서지민 | 이렇게 마지막 노래까지 듣고 왔는데요, 너무나도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김은승 |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느끼는 허전함 ‘Kenopsia(케놉시아)’, 소란스러운 세상과 분리돼서 느끼는 아늑함 ‘Chrysalism(크리살리즘)’, 아무런 맥락도 없지만 느껴지는 외로움 ‘Monachopsis(모노콥시스)’. 오늘 이렇게 3단어 살펴보았습니다. | 서지민 |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이 단어들이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김은승 | 그러니까요. 저도 단어들을 소개하면서 3개 다 이미 느껴본 적 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아요. | 서지민 | 부디 여러분들께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이 되는 단어들이었길 바랍니다. | 김은승 | 오늘 라디오도 즐겁게 들으셨나요? 저희 <새로운 언어, 익숙한 감정> 코너는 다음에도 여러분의 감정 표현과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는 새롭고 다양한 단어들로 돌아오겠습니다. | 서지민 | 지금까지 AD 이윤영, 기술 김고경, 아나운서 서지민 | 김은승 | 김은승이었습니다. 다들 환절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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