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곡 듣고 오셨습니다. 지금부터 한 가지 아주 간단한 실험을 해볼 건데요. 잠깐 하던 일을 멈추시고 ‘한글’이라는 단어를 속으로 열 번만 반복해보세요. 한글, 한글, 한글...
열 번 다 말하셨죠? 어떠셨나요? 어느 순간부터 ‘한글’이 뭔지 모르겠고, 그냥 이상한 소리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으셨나요? 분명 평생 알고 쓰던 단어인데, 여러번 반복하다 보니 갑자기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현상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글자 붕괴’ 현상입니다.
같은 글자를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이게 무슨 글자인지, 이게 원래 이런 거였는지 의심이 드는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런 현상을 ‘게슈탈트 붕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미 포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단어는 왜 갑자기 낯설어진 걸까요?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듣거나 읽으면 뇌에서는 그 단어의 의미를 담당하는 신경 회로가 활동합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하면, 뇌에서 그 단어를 처리하는 방식에도 일시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단어의 의미보다 소리나 글자의 형태가 더 눈에 들어오면서, 소리의 울림이나 글자의 모양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어떤 음식을 한 끼, 세 끼, 일주일 내내 먹으면 어느 순간 음식을 먹고 있는 게 아니라 씹는 행위로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맛이 사라지는 것처럼 의미도 사라지는 거예요.
이 현상은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보고서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쓰고 있는 단어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이 맞춤법이 맞나?’ 하고 괜히 검색해 보신 적 있으시죠? 그건 여러분의 맞춤법 실력이 떨어지거나 퇴행한 게 아니라 뇌가 그 단어에 잠깐 지쳐 있는 겁니다.
다행히 이 피로는 오래 가지 않는데요. 잠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휴식을 취하면 금방 돌아오게 됩니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단어가 낯설어진다면 억지로 붙잡고 있지 말고 잠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오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부터는 매일 쓰는 말이 갑자기 낯설어지게 되면 ‘내 뇌가 열심히 일하다가 피로가 쌓였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잠깐 쉬고 싶어한다는 신호인 거죠. 마침 내일부터는 한글날 연휴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평소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쓰던 글자와 말들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익숙한 것도 잠시 멈춰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처럼, 지금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잠시 음악 들으면서 머리도 쉬어가 볼까요? 아이유의 ‘마음’ 듣고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