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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시청 논란부터 학생 성명문까지… '아침 월드컵'이 만든 사회적 현상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월드컵을 본 선생님을 색출하겠다니요.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함께 응원하며 연대감을 배우는 것도 교육의 일환입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전에는 없던 낯선 풍경을 만들고 있다.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14시간 안팎의 시차 때문에 주요 경기들이 한국 시간으로 평일 오전 8시~11시에 몰려 있다. 하루 중 가장 바쁘게 돌아가야 할 평일 아침에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겹치면서, 예전처럼 온 국민이 광장에 모여 붉은 옷을 입고 밤새 환호하던 축제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일터와 학교에서 벌어지는 '축구를 볼 권리'와 '본업(수업과 업무)' 사이의 크고 작은 눈치싸움이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축구를 튼 교사를 찾아라"… 교장 통제에 성명문으로 맞선 학생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가장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곳은 초·중·고교 교육 현장이다. 발단은 오전 시간대에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리자, 일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교실 TV로 다 함께 중계를 시청한 것이었다.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예민한 시기인 만큼, 일부 학교의 교장 등 관리자들은 이를 명백한 '학습권 침해'로 규정하며 강하게 시청을 통제했다. 나아가 어떤 반에서 축구를 틀어줬는지 교사들을 찾아내어(색출) 책임을 묻고 징계하려는 강압적인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사자인 학생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통제와 교사 색출에 분노한 학생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직접 성명문을 발표하며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들은 성명문을 통해 "축구를 보자고 간절히 부탁한 것은 우리들인데 왜 선생님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징계하려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서 "스포츠를 통해 규칙과 하나 됨을 배우고, 국가적인 행사를 다 같이 응원하는 것 역시 훌륭한 학교 교육의 일부"라며, "학생들의 의견과 선생님들의 교육적인 판단을 무시한 강압적인 통제를 멈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한 월드컵 시청 문제를 넘어, 학교 현장에서의 권리와 억압을 둘러싼 묵직한 사회적 이슈로 번진 이례적인 모습이다.
- 기말고사 앞둔 강의실… '민폐' 피하려는 소리 없는 눈치싸움 이러한 '아침 월드컵'의 파도는 다가오는 22일 종강을 앞두고 기말고사와 보강이 한창인 우리 대학 캠퍼스에도 스며들었다. 하지만 학점과 직결된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학우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철저히 '소리 없는' 관람을 택하고 있다.
대형 강의실 뒷자리에서는 무선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 태블릿이나 노트북 화면 구석에 중계창을 아주 작게 띄워놓고 몰래 경기를 보는 학우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행여나 중계 화면이 번쩍거려 주변의 시야를 방해할까 봐, 아예 포털 사이트의 '텍스트 중계' 창만 띄워놓고 새로고침을 누르며 글로만 얌전하게 경기를 따라가기도 한다. 전국적인 타 대학 커뮤니티들에서는 종종 시청권과 학습권을 두고 뼈 있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의 학우들은 대부분 서로의 예민한 시험 기간을 존중하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월드컵을 즐기고 있다.
- 반차 행렬과 숏폼의 유행… 월드컵이 바꾼 2026년의 아침 학교 밖 직장인들 역시 치열한 눈치싸움 중이다. 한국 대표팀 등 주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직장마다 오전 반차나 연차를 선점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듀얼 모니터 구석에 상사 안 보이게 중계 띄우는 법', '업무 시간에 대놓고 축구 보는 동료 신고 가능한가요' 같은 글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대놓고 영상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역시 텍스트 중계로 눈을 돌린다. 이번 대회부터 48개국 참가와 32강 토너먼트가 도입되면서 한층 복잡해진 '경우의 수'를 분석하는 인터넷 글들도 쉬는 시간마다 불티나게 공유된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짧은 영상(숏폼)으로 골 장면만 재빠르게 챙겨 보는 짠하고도 새로운 풍경도 생겨났다. 거리 응원의 함성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모니터와 스마트폰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월드컵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은 단순히 48개 나라가 경쟁하는 스포츠 대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가장 바쁜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큰 질문을 던져주었다. 밤샘 응원의 뜨거운 열기 대신, 학생들의 성명문이 등장하고 소리 없는 눈치싸움이 이어지는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여가 시간과 본업 사이의 선을 어떻게 긋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2026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_장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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