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엄마는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이런 생활을 기대했을까?
엄마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만큼이나 엄마를 들여다봤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스무고개 하듯 단어를 던지던 어린 시절처럼. 엄마에게 한국은 “상처를 받은 공간” 그러나 동시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저자의 눈에 통일교 교인들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지만 엄마에게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엄마는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넉넉한 벌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농사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낀다. 저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범위 밖의 이야기를 서툰 한국말로 말하는 엄마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끊이지 않는 한탄에 지쳐 화가 난 적도 있다. “엄마가 한국에 대해 더 찾아봤어야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결정했어야지. 엄마가 한 결혼이니까 엄마가 감당해야지.” 원망과 연민에 갈팡질팡하던 저자는 이내 말을 삼키고 엄마와 엄마의 모국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
엄마의 속엣말을 들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서 기억과 마음을 대신 기록한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이주여성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서술하는 책은 아니다.
청년의 가난, 지방의 소멸, 여성 폭력이라는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소수자들을 문제 상황 안에 가두고 변화를 촉구하는 책도 아니다. 아주 개인적인 시선으로 누군가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분투하는 책이고, 그래서 훼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서사를, 망가질 수 없는 존엄을 말하는 책이다.
‘우리’라는 대명사는 ‘다문화’와 닮았다. 나와 너를 품는 듯 보이지만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은 밀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저자와 저자의 엄마와 같은 이주배경청년? 이 책에 공명하는 독자? 아니면 다문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모든 사람들? 결국 이 질문은 세상에서의 자기 범주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그 범주를 넓혀보자고 제안한다. 내 앞의 울타리를 허물어 너의 자리를 만들기. 여기에 데려오는 게 아니라 거기로 가기. 그렇게 ‘우리’의 외연을 넓히기. 그런 희망을 담아 이 책을 우리에게 권한다.
“내가 나와 가족에 대해 책을 쓴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 동생도, 그리고 이주배경청소년인 동생의 친구도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 벅찬 감정이 들었다. 동생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한국에서 이주배경을 가진 청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가 그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 다양함과 풍요로움이 젊은 우리 엄마가 겪었던 것보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살이를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동생들보다 먼저 태어난 이주배경청년으로서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뿌듯해진다. 나는 동생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린다.”(1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