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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미의 이름 : 지난날의 장미는 그 덧없는 이름뿐
작성자 언론사 등록일 2020.02.28


 



장미의 이름 : 지난날의 장미는 그 덧없는 이름뿐

언론사 실무관 이지훈

 

TV조차 보지 않는 세대이다. 이 글을 보며 전화 받는 동작을 취해 보기 바란다. 혹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편 손을 귀에 갖다 대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이다. 현재 우리 대학 언론사에서 매체를 다루는 학생들은 애초에 스크롤과 엄지를 위아래로 저으며 뉴스를 보는 세대이다. 태어나 한 번도 신문 특유의 잉크 냄새를 맡으며 기사를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또래들을 보여주려 종이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를 비롯하여 전국의 각 대학 언론사는 현재 정체성의 위기를 넘어 존폐 기로에 서 있다.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고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저널리즘이 지닌 영향력은 미미해졌다. 과거에는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신문을 비롯한 대학 언론사가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사회공헌을 도모했지만, 현재 언론사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정보를 접하는 과정에 있어서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중요해졌고 방법 면에서는 종이 지면보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유튜브가 압도적이다. 우리는 그 전환점에 직면해있다. 아니 이미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가을, 대학언론이 잃어버린 시대적 가치를 되찾고 미래를 모색하고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많은 구성원이 설문에 성심껏 참여하였고 많았던 참여만큼 문제점은 더 명확해졌다.

 

왜 흰고래를 쫓는가

이런 충격적 결과의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인력·예산의 부족’, ‘관심 부족’, ‘비전문성등의 문제가 있지만, 핵심은 기사의 생산 방식과 소비 방식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언론사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사와 타 대학도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언론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저널리즘 자체가 지닌 한계다.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정보 교환이 가능해졌고 SNS,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이 나타나면서 활자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많은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고, 대학마다 구축된 학교 홈페이지는 대학신문이 담당했던 공식적인 학교 소식과 행정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정보의 파편화다. 사회에 관한 공통된 이슈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따른 소비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세대일수록 크다. 즉 디지털 기술에 민감하고 생활방식이 달라진 2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대학사회에서는 저널리즘 혁신이 더욱 시급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다. 우리 역시 종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으며 뉴미디어 형식에 맞는 기사는 취약하다. 몇 해 전 광장에서 확인했듯이 정권마저 바꿔버린 집회에서 빛을 발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바로 한 명 한 명이 인터넷을 통해 밝힌 작은 촛불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표현한 정보였다. 또 그 정보를 통한 연대였다. 참여와 개방, 공유가 일상화되고 신속해진 이 시대에서 학내 구성원들은 월간으로 발행되는 신문보다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각종 학내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신문은 점점 위축되고 말았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언론사는 자신의 영향력 감소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 종이를 중심에 두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지 못했고, 뜻밖에 높은 디지털의 문턱 앞에서 좌절했다. 젊었지만 디지털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미비했다. 더불어 대학 간의 경쟁이 심화 되고, 학사관리가 엄격해지면서 대학신문에서 언론활동을 하는 기자들은 신문제작과 학과수업이라는 고된 업무에 시달리게 되고, 이 같은 상황은 기자 수 감소와 질적 하락으로 이어져 언론활동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이는 대학언론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대학사회 자체의 보수성, 대학 내 미디어 정책의 부재, 기술개발이나 투자의 부족 등이 어우러져 대학언론의 침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비유의 바깥

이런 문제점은 대학언론의 고유한 기능마저 뺏기고 있다. 과거 대학언론은 대학 내 공론의 장으로서 비판 지성이 넘쳐나며 시대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에브리타임'이라는 시간표 앱이 익명이 주는 편안함, 제보의 편리성, 모바일 기반이라는 장점 때문에 학생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여론을 형성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익명으로 사용하는 이 게시판에서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민 자체가 청년 세대의 현실과 학생사회의 문제를 짚어내는 역할을 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며 학내에 비판적인 의견도 제시하는 등 꽤 진지한 토론도 이뤄지고 있다. 대학언론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인 의제를 던지고, 대학과 학생사회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부분을 잠식당했다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익명에 기댄 게시물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며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콘텐츠도 많이 올라온다. 그 파급력과 효과는 인정하나 모든 게시물에 정제된 논리와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는 것만은 아니며 출처 없는 추문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커뮤니티 게시판을 대학언론의 대안으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다. 에브리타임의 현재 콘텐츠는 불편함이나 어려움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틀에서 큰 폭으로 벗어나지는 않는다. 학내 문제 중 학사구조개편과 지역의 여순사건 재조명처럼 좀 더 복잡한 사안이나 지역과 구성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의제가 커뮤니티만으로 표출되지 않는 문제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전히 대학언론만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결국, 어떤 매개체로서, 의견을 종합하여 공적인 장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고발이나 제보를 모아내는 싱크탱크 역할로서 충분한 당위성이 있고 여러 이야기를 묶어 의미 있는 인 사이트를 도출하는 고유기능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올겨울은 정말 춥고 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겨울을 위해 담근 베짱이의 묵은지도 이제 장독대의 바닥을 긁는다. 그러나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수십 년 만의 더위와 추위가 있었지만, 어김없이 꽃은 피었고 낙엽은 졌다. 사상 최악의 경제 성장률과 취업난이라는 기사는 죽지도 않고 또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위기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이제껏 대학언론을 유지해온 그동안의 선배 기자들에게는 감사를 표한다. 혹시 누군가가 비난한다면 그들에게 안도현 시인의 시를 빌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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